지마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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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마 이사금은 신라의 제6대 이사금이며, 파사 이사금의 장남으로 김씨 가문 출신인 아례 부인과 결혼했다. 115년에 가야를 공격했으나 실패하고, 121년에는 왜의 침입을 받아 이듬해 강화했다. 125년에는 말갈의 침입으로 백제에 원군을 요청하여 격퇴했으며, 백제와 동맹 관계를 맺었다. 지마 이사금은 134년에 사망했으며, 아들이 없어 백부인 일성 이사금이 왕위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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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마 이사금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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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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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이사금 |
재위 기간 | 112년 - 134년 |
즉위 | 112년 |
이전 | 파사 이사금 |
이후 | 일성 이사금 |
아버지 | 파사 이사금 |
어머니 | 사성 부인 |
사망 | 134년 |
사망 장소 | 신라 |
추증 시호 | 지마 이사금 (祇摩泥師今) |
한국어 | 지마 이사금 |
한자 | 祇摩尼師今 |
로마자 표기 | Jima Isageum |
개인 정보 | |
휘 | 박지마(朴祗摩) |
왕후 | 애례부인 김씨 (愛禮夫人 金氏, 마제 갈문왕의 딸) |
자녀 | 내례부인 (內禮夫人) 이매 (伊買) |
2. 배경
지마는 선대 국왕인 파사 이사금과 사성 부인의 장남이었다. 그는 김씨 씨족 출신인 아례 부인과 결혼했다.
지마 이사금은 재위 기간 동안 가야, 왜, 백제, 말갈 등 주변국들과 활발한 대외 관계를 펼쳤다.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평화 관계를 맺으며 신라의 국력을 다졌다.
3. 치세
115년과 116년에는 가야를 공격했으나 실패했고,[1] 121년에는 왜의 침입을 받았다. 123년에는 왜와 강화하였으며,[2] 125년에는 말갈의 침입을 백제의 도움을 받아 격퇴했다.[1]
134년에 지마 이사금이 사망하면서 후계자가 없어 왕위는 백부인 일성 이사금에게 계승되었다. 『삼국사기』에는 매장지에 대한 기록이 없다. 『삼국유사』에는 지마 이사금 시대에 음질국(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과 압량국(경상북도 경산시)을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3. 1. 가야와의 관계
115년 음력 2월 가야(伽耶)가 남쪽 변경을 공격하자, 음력 7월 지마 이사금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가야를 공격하여 황산하(黃山河, 낙동강)를 건넜으나, 가야군의 복병에 걸려 패하고 퇴각하였다.[1] 이듬해인 116년 음력 8월 다시 1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야를 공격했으나, 공성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물러났다.[1][2] 이후 지마 이사금은 가야 정벌을 포기했다.
3. 2. 왜와의 관계
121년 음력 4월 왜의 침입을 받았는데, 이듬해 음력 4월 수도 주민들이 왜의 침입이 다시 있을까봐 소문을 퍼트려 이찬 익종 등이 수습하였다.[1] 123년 왜와 강화하였다.[2]
121년 2월 대증산성(부산광역시 동래구)을 축조했다. 같은 해 4월 왜인이 동부 변방(해안 지역)에 침입해왔고, 2년 후인 123년 3월 왜국과 강화했다.[2]
3. 3. 백제와의 관계
파사 이사금 26년(105년)에 백제와 평화 관계를 맺은 이후, 지마 이사금 대에도 평화 관계가 이어졌다. 125년 말갈이 침입하자 백제의 기루왕에게 원군을 요청했고, 기루왕은 다섯 장수를 보내 말갈을 격퇴하였다.[1] 113년 백제의 기루왕이 사신을 보낸 것을 바탕으로, 신라와 백제 사이에 동맹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3. 4. 말갈과의 관계
125년 음력 1월과 음력 7월에 말갈이 침입하였다. 지마이사금은 백제 기루왕에게 원군을 청했고, 백제는 다섯 장수를 보내 이들을 격퇴하였다. 파사 이사금 26년(105년) 백제와 화친한 이후 신라와 백제의 관계는 지마, 일성 이사금 2대에 걸쳐 평화로웠다.[1] 같은 해 7월, 말갈이 니하(泥河, 남대천)[3]를 넘어 재차 침입해 오자, 백제에 국서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여 백제의 다섯 장수가 말갈을 물리쳤다.
3. 5. 기타
백제와의 관계는 파사가 수립한 휴전이 지속되어 평화로웠다. 125년 말갈이 북쪽에서 침략해오자 지마는 백제에 지원을 요청했고, 기루는 군대를 보내 침략자들을 성공적으로 격퇴했다.[1]
115년과 116년에 낙동강을 건너 가야 연맹을 침략했으나 실패했다.[1]
123년에는 일본의 왕국인 왜와 관계를 수립했다.[2]
113년 백제의 기루왕이 사신을 보냈고, 신라와 백제 사이에 동맹 관계가 맺어진 것으로 보인다. 121년 2월에 대증산성(부산광역시동래구)을 축조했고, 같은 해 4월에는 왜인이 동부 변방(해안 지역)에 침입해왔다.[2]
125년 7월에는 말갈이 니하(泥河, 남대천)[3]를 넘어 침입해 왔으므로, 백제에 국서를 보내 원군을 요청했고, 백제는 5명의 장군을 보내 말갈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재위 23년 만인 134년 8월에 사망했다.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백부인 일성 이사금에게 계승되었다. 매장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다.
『삼국유사』 왕력에는 지마 이사금한국어 시대에 음질국(경상북도경주시 안강읍)과 압량국(경상북도경산시)을 멸망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4. 가계
항목 | 내용 |
---|---|
부왕 | 파사 이사금 |
모후 | 사성부인 김씨 |
왕후 | 애례부인 김씨 - 갈문왕 마제의 딸 |
딸 | 내례부인 - 신라 8대 왕 아달라 이사금의 왕비.[4] |
아들 | 이비 갈문왕 |
할아버지 | 유리 이사금 |
할머니 | 김씨 부인 |
배우자 | 애례부인 |
아들 | 박아도 (아도 갈문왕) |
지마는 선대 국왕인 파사 이사금과 사성 부인의 장남이었다. 그는 김 씨족 출신인 아례 부인과 결혼했다.
5. 사망
134년 8월, 재위 23년 만에 사망했다.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에 왕위는 백부인 일성 이사금에게 계승되었다. 매장지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다.[2]
참조
[1]
웹사이트
지마이사금, 가야를 공경하고 왜구와 말갈의 침입을 막아내다
https://www.najeong.[...]
2014-09-05
[2]
삼국사기
『三国史記』新羅本紀巻第一祇摩尼師今
[3]
문서
泥河
[4]
삼국사기
삼국사기 권제2 아달라 이사금 條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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